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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른여덟 번째 김치

불암산 자락 작은 아파트 번잡한 도시는 싫다.

뒤편엔 병풍처럼 산이 돌려져 있고 산자락에 텃밭을 일구어

봄이 오면 오이와 풋고추를 심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 또한 크다.

이곳 상계동은 제2의 고향이다.

어언 25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반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즈음이다.

아파트 마당을 나서면 낯익은 얼굴들 마트에서나 지하철역에서나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딸아이는 엄마 아무렇게나 다니지 마. 옷차림 하나에도 신경 써야겠어.” 그렇다 정든 이웃과 아이들 학부모 모임

성당에서 만난 교우들 골목길 산이 있어 정든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찻길 하나 사이에 두고 아들이 살고 있다.

자식들이랑은 국그릇 하나 식지 않는 거리에 오고 가면서 살아가기를 원했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자식들이 찾아와 주면 반갑다 그렇지만 얘들아, 오너라"라는 말도 못 하고

반찬이라도 만들어 전해주고 싶지만, 애들이 오면 이것저것 챙겨 주면 좋아라 가져간다.

길목에 서서 아들의 집 현관문으로 불빛이 비취면 아! 집에 있구나, 생각하고 어두우면 아무도 없나 하곤 그냥 지나친다.

올해로 시집와서 서른여덟 번째 김치를 담갔다.

그러고 보니 아들 나이가 서른여덟 젖 먹일 때 업고 시장을 보고 일 년 김장은 큰 잔치였다.

목련 나무 밑에 구덩이를 파고 항아리를 담그던 시절, 마치 잔칫집 같았다.

올해는 김치냉장고 안에 김치를 차곡차곡 챙겨 놓고 나니 피곤하다.

하지만 마음은 평온하고 포근하기만 하다.

며느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 있을 때 주말에 김치 가져가 먹어

네 어머니 수고 많으셨어요. 주말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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