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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초의 기억

바람 소리 윙윙거리고 어디선가 찹쌀~떡 장사의 소리가 밤의 정적을 고요히 흔들리는 깊은 겨울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들은 외가에 가시고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세 살 위 언니는 아랫목에 누워 있어 이불을 약간 들추어 보니 감고 있는 눈은 약한 경련을 떨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며칠 동안 언니는 왜 그랬을까?

지금도 그때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옆방에서 벽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신문지 찢는 소리,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

거지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귀신의 소행 같아 떨고만 있었다.

새벽녘 아버지께서 오셨다.

나는 막 울면서 옆방에 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방문을 열어 보니 아무도 없었다.

천장에서 쥐들이 달리기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쫓고 쫓기고 했다.

천장과 벽지를 찢어 놓고 방바닥에 종이가 쌓여있고 천장이 훤히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언니가 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는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매우 공부를 잘했던 언니는 전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했을 정도였다.

며칠 전 안부 전화를 모처럼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수화기넘어로 들려오는 말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든 소리다.

끊을 생각은 하지 않고 쏟아내는 원망과 질투다.

왜 내가 전화를 했지! 통화를 안 하는 게 서로 도와주는 것 같다.

아! 다시는 연락을 말아야지.

엄마한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언닌 나와는 대조를 이룰 만큼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자랐다.

언니의 두 아들 역시 공부를 잘해 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나보다.

내가 매우 잘살고 있다고 느껴져 다시 심술을 부리다니 설마 설마 했는데 이럴 수가 수화기를 살며시 놓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 언니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

힘들어, 힘든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어 

그러지 말아 한 뿌리에서 태어나 자란 형제야

항상 나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 언니였어. 왜 항상 날 짓밟고 있어

지금도 그래

미친 괴물 같은 그 집 갔을 때 언니가 보여준 행동들 난 잊지 못해

만일 내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나는 내 동생 부둥켜안고 통곡했을 거야

그런데 언니는 어째서 그 집 편을 들었어 아직도 그래 조심스럽게 어려운 문자를 보냈다.

며느리에게 선물 받은 가방, 옷들과 함께

내게 온 답장은 돌려준다고...;

.........;;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무심코 받는 전화는 언니였다.

나 지금 바빠 하고선 끊어버린 전화 바로 그때 현관에서 들려온 소리 '택배요' 현관에 나가 받아본 택배는

언니가 보낸 대구 능금과 감이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살아’ 언니의 문자다.

그럴게

난 '언니가 행복했으면 내가 행복한 것보다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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